조선후기의 경제2
I. 농업
시간이 갈수록 농사 기술이 발전해.
사람들은 생산량을 더 많이.. 더 많이... 더 많이..... 이렇게 몇 대를 내려오면서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면서 연구를 하여 기술을 발전시켰어.
밭과 논을 따로 해서 살펴보자.
1.밭
(1) 파종법
그림부터 보자. 윗부분이 이랑, 아랫부분이 고랑이야.
원래 아주 옛날 사람들은 이랑 고랑 구분 없이 걍 평지에다 씨앗을 뿌렸어. 이를 만종법이라고 해.
그러다가 농업스킬이 발전되어 사람들이 밭을 갈기 시작한 거야.
그러니 이랑과 고랑의 개념이 생기겠지?
그래서 사람들이 통풍도 잘되고, 햇빛도 잘 드는 이랑에다 씨를 뿌리기 시작해. 이것이 바로 농종법!
이렇게 하면 배수처리도 잘되고, 고랑을 살짝 갈아주면 잡초제거에도 쉽거든.
조선전기까지는 모든 농민들이 농종법을 따랐어.
아직도 콩, 팥, 수수 등 여름작물은 농종법으로 재배한단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 와서 실학자 박세당, 서유구가 모든 작물이 농종법에 적절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해.
특히 배수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 겨울작물은 오히려 고랑에다가 심으면 훨씬 잘 자란다는 것이지!
생각해봐.
겨울에 추워죽겠는데 이랑처럼 통풍 겁나 잘되면 얼어 죽는 작물들이 늘어나잖아 ㅋㅋ
따라서 겨울작물한테는 이랑보다 따뜻하고 보습 효과가 있는 고랑이 더 적절한 거야.
이렇게 하여 조선 후기에는 겨울작물을 고랑에다 씨를 뿌리는 견종법이 확산돼.
(2) 시비법과 상품 및 구황작물재배의 발달
거름기술인 시비법이 더욱 발달했고,
또한 조선 후기에 이 땅에 없었던 고구마, 담배 등이 수입되면서 상품 및 구황작물재배가 활성화 된단다.<★★★>
상품작물이 뭐냐면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한 목적으로 재배하는 농작물이야.
인삼, 담배, 채소 등...
2.논
개념부터 잡고 가자!
직파법 - 걍 땅에다 씨를 뿌리는 방법.
이앙법 - 곧바로 진짜 논에다가 씨를 뿌리는 게 아니라, 일정한 크기의 가짜 못자리에다가 씨를 심은 후 어느 정도 자라면 진짜 논에 빽빽하게 옮겨심는 방법.
이앙법은 빽빽하게 심을 수 있어서 생산량도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또한 잡초가 별로 자라지 않아 필요한 노동력도 줄어들어.
굉장한 방법이지.
고려시대 때 이앙법이 개발되어 농민들이 사용하긴 했지만 나라에서 남부의 일부 지방을 제외한 곳에서는 이를 금지해.
이 좋은 것을 왜 금지 하냐고?
이앙법에는 물이 겁나 많이 필요하거든. 가뭄에 취약하다고!!
만약에 비가 제때 오지 않아서 가뭄이 들잖아? 그럼 농사 망함; 진짜 완전 망하는 거야.
여기저기서 농사 망쳐 흉년들면 나라 경제 파탄 나는 거지;
너무 위험해...
따라서 조선전기까지는 직파법이 대세야.
근데 문제는 직파법 생산량이 쓰레기 수준이라는 거지ㅠ
게다가 잡초 뽑느라 노동력도 조낸 필요하다고...
우리 조상들은 이 직파법을 버리고 어떻게 안전하게 이앙법을 이용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해.
그러다가 결국 조선후기에 와서는 수리시설을 발전시켜!
저수지 관리가 잘되어 물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고.
가뭄이 와도 언제든 물을 댈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니 나라에서는 이앙법을 금지시킬 이유가 없어진 거야.
따라서 조선후기에는 남부지방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이앙법이 대세가 되지.
그리고 하나 더 알아둬야 할 것은 이앙법을 사용하면서 이모작이 가능해졌어.
이모작이 뭐냐면 1년 동안 땅에 2번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거야.
가을에 보리를 심으면 5월에 수확할 수 있거든? 근데 벼는 꼭 4월에 심어야 돼.
한 달이 겹치잖아? 저 망할 한 달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둘 중에 하나를 포기해야 됐다고 ㅠ
하지만 이앙법이 뭐라고? 본 논에 심기 전에 못자리에 심는다고 했잖아.
따라서 보리를 수확할 때까지 본 논을 꼭 이용하지 않아도 되는 거야!
보리를 수확한 후에 모를 논에다가 심을 수 있어 한 달이 겹치는 X같은 상황을 한방에 해결!!!
생산량이 어떻게 되겠어? 완전 늘어나겠지?!
보리랑 쌀이랑 둘 다 먹을 수 있으니 이앙법의 은혜는 한이 없지~
이앙법이 일반화 되면서 생산량은 늘어나고 필요한 노동력은 줄어든다고 했잖아.
이에 따라 광작 경영이 가능해지고 농민층이 분화됐으며, 소작농 중에 많은 이들이 짤려 ㅠ
소작농을 이용하는 대신에 돈도 더 적게 들고 자신의 말에 절대 복종하는 머슴을 고용하여 직접 농토를 경영하는 지주와 부농들이 늘어나는 거야.
일자리를 잃은 소작농 실업자들은 더 이상 농사를 짓지 못하고, 광산 혹은 수공업장으로 들어가지.
이렇게 되어 조선 후기에 광업이랑 민영수공업이 급격하게 발달해.
뜻밖의 발달...
3. 농서
이앙법이니, 견종법이니... 다 피와 땀을 흘린 연구의 결실이야.
백성들의 생산량을 증가시키기 위한 연구가 꾸준했다는 거지.
이에 따라 중국농사법이 아닌 우리의 땅과 기후를 연구하여 직접 심어보기도 하고, 농민들에게 물어보기도 해서!
'어떻게 해야 자연재해를 막을 수 있을까? 어떤 땅이 적절할까? 이렇게 하면 밥맛은 어떨까? 김매기를 자주하자! 품종에는 이러이러한 것들이 있는데 파종기 성숙기 적지는 이러이러하다.' 등의 내용을 수록한 농사에 관한 책이 발간되는데,
조선전기에는 농사직설(정초 등), 금양잡록(강희맹)!
후기에는 농가집성(신속), 임원경제지(서유구)!
전기 2개, 후기 2개... 이거 암기하도록!
4. 지대
지대! 땅에 대한 임차금!
조선전기에는 타조법이 대세였어. 즉 병작반수가 일반적이었지.
네가 소작인이라면 땅 주인한테 전체 수확량 1/2을 갖다 내야 돼.
이렇게 되면 어떻겠어? 땅 주인 입장에서는 소작인이 일을 열심히 하고 더 많이 하면 자신한테 이익이잖아?
겁나 쪼아대는 거지 ㅋㅋ 80가마 생산할 것을 재촉하고 또 재촉해서 100가마 생산해내도록 말이야.
그러다가 어느 날 소작농이 땅주인한테
소작농 : 주인어른. 내가 50가마 내던 거 60가마 드릴 테니 더 이상 쪼아대지 마십쇼. 풍년이든 흉년이든 60가마 드림.
땅주인 : 진짜? 알았다. 못 내기만 해봐라.
농사직설 등의 농서를 공부한 이 소작농은 이앙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
그래서 이앙법 스킬을 시전 하여 200가마를 생산해 낸 거야.
60가마는 땅주인한테 주고, 쌀140가마랑 이모작으로 수확한 보리는 소작농 차지ㅋ
이와 같이 정율이 아닌 정액, 즉 정해진 액수로 지대를 지불하는 방법을 도조법이라고 해.
"타조법 → 도조법"
● 밭 : 견종법. 상품 및 구황작물재배 활성화
● 논 : 이앙법.
● 이앙법 : 가짜 못에 심었다가 진짜 못으로 옮김. 생산력 증가. 노동력 감소. 가뭄에 취약. 조선전기까지 일부 남부지방 제외하고 금지. 수리시설 발전 후 전국적으로 허용 및 확산. 이모작 가능. 광작경영. 농민층 분화. 광업·민영수공업 발달
● 농서 : 조선전기-농사직설(정초 등),금양잡록(강희맹). 조선후기 - 농가집성(신속),임원경제지(서유구)
● 지대 : 타조법 → 도조법
II. 상업
1. 사상의 등장
조선전기에는 정부의 허가를 받은 관허상인이 주를 이루었다고 했잖아?
후기에는 상공업의 발달로 관허상인 뿐만이 아니라 각 지방의 상업중심지를 연결하여 물품을 교역하는 사상(개인 장사꾼)도 엄청 생겨.
사상에는 거상·객주·여각·도고·영세상인이 있어.
거상은 지금의 대기업이나 마찬가지야.
의주 만상, 평양 유상, 개성 송상, 한양 경상(경강상인), 동래 내상이 있었단다.
지도에 있는 그들의 위치를 반드시 기억해둬.
의주만상은 청나라와, 동래내상은 왜놈들과 무역을 주도하면서 막대한 이윤을 남기는 장사꾼들이었지.
한양 경상은 운송업을 기반으로 성장하여 선박 건조 분야까지 진출했단다.
가장 주목해야 할 상단은 송상!
송상은 전국에 송방(송상의 상점 및 지부)을 쫙~설치해서 장사를 했고, 만상과 내상의 중간에서 중계무역을 통해 이윤을 남겼지.
그리고 이들은 무엇보다 인삼 재배에 앞장서서 돈을 쓸어 담았어.
객주는 금융업, 여각은 숙박업, 도고는 독점적 도매상인(공인의 일부가 도고로 성장함)<★>이야.
(2) 대외무역
거상들이 주도한 대외 무역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말해주자면...
크게 개시와 후시로 나뉘어.<★>
개시는 국가에서 공적으로 허용한 무역이고, 후시는 사적인 무역이야.
후시는 대표적으로 지도에 나와 있는 중강후시가 있지.
청과의 무역에서는 주로 비단·약재·문방구 등이 수입되고, 은·종이·무명·인삼 등이 수출됐단다.
일본과의 무역에서는 은·구리·황·후추 등이 수입되고, 인삼·쌀·무명 등이 수출됐다는 것을 알아둬!
(3) 관허상인
후기의 관허상인들을 살펴보면....
시전상인이 금난전권으로 모은 어마어마한 돈으로 정경유착을 하여 문제를 일으키자...
조선후기정치파트에서 설명한대로 정조가 금난전권을 혁파(신해통공)했어.
그래서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받았지.
한편 보부상은 장시를 통해 유통망을 형성하면서 장사를 했단다.
지방에서는 5일장이 열렸는데, 보부상들이 돌아다니면서 각 지역마다 정기적으로 5일마다 물건을 유통하여 시장이 형성된거야. 상설화가 된 거란다.
그리고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종류의 관허상인이 나타나!
대동법이 실시되면서 대궐이나 관청에 물건을 납품하는 공인이 등장했다고 했지?
이들도 역시 관허상인에 포함이 돼.
공인은 저번시간에 설명했으니 패스~
시전상인! 보부상! 공인!
(4) 시장의 발달
조선전기에는 상인들의 활동무대가 대도시와 장시가 전부였지만, 후기에는 여러 곳이 더 생겨.
광주송파장, 은진 강경장, 덕원 원산장, 창원 마산포장이 대표적이지.
그리고 선박을 갖고 대량 거래를 하는 포구 무역이 활성화 돼.
이런 포구를 중심으로 객주와 여각이 많이 세워졌단다.
참고로 강경포와 원산포 같은 포구 무역을 주도한 장사꾼들이 경상들이야.
학생들! 유기적으로 생각해야 돼.
저번 시간에 말한 이앙법이 실시되면서 소수의 경영형부농과 광작이 생겨나고 대다수의 많은 농민들이 토지를 잃게 되고, 또한 소작농에서 해고된 후에 상인 또는 공인으로 갈아타는 거야.
또한 농업 생산력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잉여물이 많아질 뿐만 아니라, 수공업장에서 물건이 쏟아져 나오니 조선에 재화가 많아지는 거지.
상인과 공인의 수가 증가되고 재화가 많아지니까 시장에 점포도 늘어나고, 물건도 많이 들어와서 거래가 빈번해지므로 상업이 발전하는 거란다.
III. 화폐
조선 전기에는 저화(종이돈, 즉 지폐)와 조선통보가 있었어.
그러나 별로 유통이 안돼.
하지만 후기에 가면서 숙종 때 상평통보가 주조되어 널리 쓰였고<★★★★>, 신용 화폐도 활발히 유통됐지.
환이나 어음 같은 게 신용화폐야.
흠... 학생들은 수표를 생각하면 될 거야.
수표는 돈이 아니지만, 은행에 가지고 가면 반드시 돈으로 바꾸어 줄 것이라는 강력한 신용이 있지?
이렇게 수표처럼 돈은 아니지만 신용이 부여된 증서를 신용화폐라고 해.
근데 문제가 생겼어. 화폐라는 것이 저장하기가 정말 좋잖아.
쌀이나 다른 물건들은 썩거나 훼손되어 시간이 가면 갈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 반면, 화폐는 썩는 게 아니라서 오랜 시간이 흘러도 그 가치가 유지돼.
그래서 돈 많은 양반들이 화폐를 집에 있는 항아리에 돈을 넣어서 땅에 묻어두고 꺼내어 쓰지를 않는 거야. 그럼 어떻게 되겠어?
시장에 돈이 돌지 않겠지? 그래서 디플레이션이 발생해.
즉, 시장에 돈이 없어서 화폐가치가 매우 높아지는 거야. 이를 전황<★>이라고 해.
조선 후기에 이런 디플레이션 현상이 있었다는 거 반드시 기억해둬.
IV. 수공업
조선 전기에는 나라에서 운영하는 관영수공업이 주를 이루었는데, 후기에 가면서 민영수공업이 잘나가.
시장이 커지고 거래가 빈번해지고, 대중들의 재화에 대한 수요가 많아졌으며, 대동법이 실시되면서 국가가 필요로 하는 물건이 많아지자 수공업장이 여기저기서 막 생기는 거지.
민영수공업장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상인(특히 공인)들이 미리 돈과 재료를 수공업자에게 지불하는 선대제 관습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둬.
이런 선대제로 인하여 돈을 주는 상인에게 수공업자가 예속되는 결과가 초래됐단다.
V. 광업
조선전기에는 광업이 국가가 운영하는 관영광업이 발달했었는데, 후기에는 민영광업이 발달을 해.
원래는 국가가 운영하는 외에 민간인에게는 광산 경영 및 개발이 금지되었으나, 17세기 부터는 개인에게 광산 개발을 허용하면서 세금을 받는 정책으로 바뀌었지.(물론 국가가 관리하는 광산도 있었음)
이를 설점수세제라고 해.
청무역이 활발해지면서 은광 개발이 성행했단다. 그 당시에 청나라 돈은 지금처럼 지폐가 아니라 은이었거든.
그래서 은 수출이 꽤나 짭짤한 이익을 가져다주었지.
여기에는 재밌는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이 바로 덕대야.
덕대는 광산을 경영하는 사람을 칭하는데, 전문 경영인 즉 CEO인 게지.
자본가들은 덕대에게 투자하며 경영을 맡기고, 덕대는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광산을 직접 꾸려나가는 거야!
이렇게 조선후기 광업에는 자본과 경영의 분리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을 기억해둬.
근데 문제가 생겨;
민영광업이 하도 발달하니까 너도 나도 다 광물을 캐가는 거야.
자원을 너무 막 캐대니까 나라에서 금지를 해.
하지만 몰래 캐는 잠채가 성행해서 큰 골칫거리가 됐다는 것을 알아두렴.
● 조선후기에 사상이 등장. 거상·객주·여각·도고·영세상인. 거상-의주만상·평양유상·개성송상·한양경상·동래내상. 만상-청나라와의 무역. 내상-일본과 무역. 경상-운송업,선박건조. 송상-송방,중계무역,인삼재배 .
● 대외무역 : 개시-공무역. 후시-사무역(ex 중강후시). 청-비단·약재·문방구 수입,은·종이·무명·인삼 수출. 일본-은·구리·황·후추 수입,인삼·쌀·무명 수출.
● 관허상인 : 시전상인-신해통공. 보부상-5일장. 공인.
● 조선후기에 포구무역이 활성화되고, 이곳을 중심으로 객주·여각이 들어섬. 포구무역은 경상이 주도. 5일장이 상설화
● 화폐 : 조선전기-저화·조선통보가 있었음,별로 유통되지 않음. 조선후기-상평통보(숙종)·신용화폐,활발히 유통됨. 전황
● 조선후기에 민영수공업 발달. 선대제
● 광업 : 조선후기에 민영광업이 발달. 설점수세제. 은광 개발 성행(청나라와의 무역 때문). 덕대(자본과 경영의 분리현상). 잠채
- O·X 퀴즈 -
1. 조선후기에는 견종법이 확산되었다. (O,X)
2. 이앙법은 가뭄에 취약하여 조선전기까지는 모든 지역에서 금지되었다. (O,X)
3. 이앙법으로 인하여 이모작이 가능해졌다. (O,X)
4. 이앙법의 일반화는 광업과 민영수공업이 발달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O,X)
5.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농서로는 농상집요와 임원경제지가 있다. (O,X)
6. 조선후기에 와서는 타조법이 대세가 된다. (O,X)
7. 만상은 청나라와의 무역을 주도하였다. (O,X)
8. 조선후기에는 포구를 중심으로 객주와 여각이 활성화 되었다. (O,X)
9. 청나라와의 무역이 활발해지자 은광 개발이 성행하였다. (O,X)
10. 조선후기 광업에서는 자본과 경영의 분리현상이 나타났다. (O,X)
정답 : O X O O X , X O O O O
<해설>
2. 남부 일부 지방에서는 허용됨.
5. 농상집요는 고려시대 농서임.
6. 도조법이 대세가 됨.
2022 수능 기출!
'전황' 단어 보이니?
'금난전권'도 보이네.
조선 후기 경제 상황이네?
1번 : 전시과는 고려.
2번 : 금융실명제는 대한민국.
3번 : 산미증식계획은 일제강점기.
4번 : 상품작물 재배 ㅇㅋ. 정답!
5번 : 벽란도는 고려.
정답 4번!